AI라는 마지막 기차
AI 붐은 평생 한 번 올 마지막 부의 축적 기회이며, 그 이후에는 돈 자체가 의미를 잃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묘사한 실리콘밸리의 풍경은 흡사 SF 소설 속 ‘기이한 종말론’을 닮아 있다. “영구적 하층민(permanent underclass)으로 전락하기 전의 마지막 기회”라는 서늘한 경고가 스타트업 현장을 지배한다. 일론 머스크는 AI가 모든 것을 자동화해 물질적 풍요가 지배하는 시대가 오면 돈의 용도 자체가 불분명해질 것이라 예언한다. 그럴수록 가치가 오르는 것은 부동산이나 예술 같은 복제 불가능한 ‘희소 자산’뿐이라는 논리다.
이 거창하고도 막연한 서사는 바다 건너 한국에 도착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절박한 형태로 변주된다. 우리에게 AI는 먼 미래의 인류학적 고민이기 이전에, 이미 놓쳐버린 부동산 기차에 대한 ‘자산적 보상 심리’와, 일자리 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근간이 흔들리는 시대에 내 자리를 지키려는 ‘존재론적 투쟁’이 뒤섞인 생존의 문제에 가깝다.
상처가 만든 기시감: “부동산도 놓쳤는데, AI마저…”
한국인의 AI 투자 열풍은 과거의 상처 위에서 자라난 듯 보인다. 2020~2021년 부동산 광풍에 탑승하지 못한 이들에게 자산 시장 낙오는 단순한 손해를 넘어 실존적인 위협이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사다리가 끊긴다”는 실리콘밸리의 단정적인 경고는, 이미 부동산 기차를 놓쳤던 한국인들에게는 잔인하지만 익숙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엔비디아와 테슬라 레버리지 ETF에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공격적으로 자금을 쏟아붓는 한국 투자자들의 모습은, 이 ‘마지막 사다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한국은행조차 우려를 표할 만큼 과도한 리스크 추구의 저변에는, 다시는 자산의 파도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절박한 생존 본능이 투영되어 있다.
노동의 재편: 도구의 진화인가, 인간의 소외인가
그렇다고 한국인의 AI 열풍을 단순히 투자 광풍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료 AI 구독료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불하는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효율적인 도구를 장착하는 즐거움’으로만 해석하기에도 뒷맛이 쓰다. 오히려 일하는 방식의 문법이 바뀌는 시대에, 내가 가진 기술과 경험이 단숨에 ‘구식’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의 발현 아닐까.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자격 요건’으로 다가온다. 퇴근 후에도, 혹은 출근 전에도 AI 툴을 익히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의 담론보다 훨씬 처절하다. 기술의 속도가 인간의 노동 가치를 앞질러가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가벼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무겁게 짓눌리는 시스템 안에서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AI라는 지지대를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풍요의 예언 뒤에 숨은 실체
일론 머스크의 말대로 정말 AI가 모든 것을 자동화해 ‘돈’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풍요의 시대에도 ‘희소한 것’의 가치는 더 빛나기 마련이다. 실리콘밸리의 AI 부호들이 역설적으로 다시 부동산으로 몰리며 성벽을 쌓는 현상은 상징적이다. 결국 우리가 목격하는 이 소란스러운 풍경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유행(FOMO)이 아니라, 가치가 재편되는 세상에서 ‘나의 몫’과 ‘나의 주권’을 확보하려는 전쟁이다.
우리 모두는 자유로운가
나 역시 이 거대한 흐름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기업이라는 울타리를 스스로 걸어 나왔을 때의 호기로움은, 자산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일의 문법 앞에서 자꾸만 작아진다. 치솟는 주식 차트와 ‘AI로 생산성 극대화하기’ 같은 콘텐츠를 보면 사정없이 마음이 흔들린다.
빅테크 주식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투자하지 않은 종목의 새빨간 차트를 확인할 때면 불안감이 내 마음을 잠식한다. 추위를 싫어하면서도 난방비 걱정에 보일러 온도를 선뜻 높이지 못하고, 병원 진료비 결제 문자에 가슴이 철렁할 때, 그 불안감은 비로소 실체가 되어 다가온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이 AI 이후의 인류 문명을 걱정할 때, 나는 오늘의 통장 잔고와 내일의 생산성부터 생각하게 된다. 2026년의 한국에서 AI는 단순히 부의 수단이라기보다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은 간절함이자,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는 길목에서 어떻게든 내 삶의 주도권(Agency)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이들의 절박한 이정표다. 문제는, 이 불안의 속도가 기술의 속도보다 빨라질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다.